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란 밀라노비치 (문단 편집) === 총리 === 2011년 총선 결과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밀라노비치의 사회민주당은 '''87석'''을 차지해 단숨에 제1정당이 되었으며 기존 여당이었던 민주연합은 '''47석'''까지 의석이 줄어들었다. 이 선거 결과는 2000년대 들어서 제1정당과 제2정당의 의석수 차이가 가장 크게 난 선거였다. 밀라노비치는 총리로 취임했다. 그의 나이 45세였으며, 그는 크로아티아의 최연소 총리로 기록되었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4년동안의 집권기동안 진보적이고 좌익적인 개혁안을 많이 내놓았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보건교육 확대, 의료보험 개혁, 그리고 동성결혼 권리 보장 등이 있었다. 또 밀라노비치는 [[유고 내전]] 당시의 전사자들과 참전용사에게 확실한 국가유공자 복지를 해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이런 파격적인 개혁에 지지율은 한때 70%까지 올라갔지만, 집권 2년차부터 집권 피로기에 밀라노비치 정부의 불안정한 내각 운영 때문에 정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밀라노비치가 압도적으로 선거에서 승리한것은 민주연합 정부에 대한 피로감도 있었지만 뭣보다도 민주연합의 [[긴축 정책]] 때문에 대폭 축소된 복지정책을 좌파 사민당이 다시 복구시켜줄것이라는 기대감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밀라노비치 총리는 [[독일]]이 권장한 긴축정책에 의외로 순순히 따르면서 경제를 더욱 악화시켰고 국민적 지지를 크게 잃었다. 2013년 국민투표에서 동성애자 권리를 제한하자는 안건이 부쳐졌는데 당연히 진보적 성향의 밀라노비치 총리는 국민투표에서 찬성표를 찍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레임덕에 시달리던 밀라노비치의 말을 들을 사람은 없었고, 국민투표는 고작 38% 투표율에 65% 찬성으로 통과되고 만다. 2015년은 그에게 있어서 최악의 해였다. 밀라노비치는 분명 참전용사들에 대한 복지를 약속했지만, 정권이 끝나가도록 국가유공자 복지의 ㄱ자도 나오지 않자 참전용사들과 전쟁 유가족들은 화가나 정부청사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그런데 밀라노비치는 이들에 대해 '''[[개소리|이 시위는 모두 보수 우파 야당인 크로아티아 민주연합에서 사주한 반정부 폭동이다]]'''라는 같잖지도 않은 막말을 퍼부었고, 지지율은 20%대까지 떨어졌다. 결국 2015년 총선에서 아무리 못해도 재선은 성공할거라는 예측과 달리 사회민주당은 선거에서 패했고, 연정 구성에도 실패했다. 물론 [[크로아티아 민주연합]]도 충분한 의석수를 확보하지 못해, 2016년 재총선이 치러졌다. 정치학자들은 모두 사회민주당이 그래도 아직은 인기있었기에 사민당의 승리를 장담했으나... '''선거를 1주 앞두고 민주연합의 지지율이 폭등, 사회민주당은 선거에서 패배해 정권을 잃는다!''' 결국 밀라노비치는 사회민주당 당수 사임은 물론이고 정계은퇴까지 해야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